[공존, 따뜻한 미래]대리양육가정 김형창 할아버지-김승훈군" ‘할아버지표 김치찌개’가 힘의 원천…투포환 국가대표로 보답할래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등의 기념일이 있는 5월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정의 달’이다. 이맘때쯤이면 가족여행을 준비하느라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느라 한창 정신이 없다.
반면 5월이 그리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신(新)가정으로 자리 잡은 한부모가정, 대리양육가정 그리고 아동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이다. 이들에겐 아빠,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선 친구들이, 어린이날 선물을 자랑하는 아이들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일반가정과 다름을 일찍이 인정하고 서로에게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 할아버지와 손자가 있다. 김형창씨(71)와 김승훈군(17ㆍ경기체고1)이 바로 그 주인공. 무뚝뚝한 할아버지 말 수 적은 손자지만 그들만이 소통하는 사랑의 언어는 특별하다.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아빠처럼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승훈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맡겨진 건 두 살 무렵이다. 이혼을 선택한 승훈이 부모가 3남매를 남겨둔 채 떠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지난해 고인이 된 할머니는 자식들의 효도를 받아야 할 시기에 다시 7살, 5살 그리고 두 살배기 승훈이 남매를 또 다른 자식으로 품었다. 대리양육가정(친조부모, 외조부모에 의한 양육)을 택한 것.
가정형편 역시 넉넉하지 못했다. 손에 장애가 있는 할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어 할머니와 작은 식당을 하며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다.
김형창씨는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방 2개짜리 지하에서 아이들과 살았다”며 “돌봄이 필요한 어린 손자들이었지만 장사를 해야 먹고사니까 오전 9시 나가서 일하다가 오후 5시만 되면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살폈다. 자기 자식 곁을 떠난 내 자식을 원망하기도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할아버지는 승훈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 태권도학원에 보냈다. 지금과 달리 몸집도 작고 몸이 약해서 힘을 키워주고 싶었던 것. 승훈이는 의외로 운동에 소질을 보이며 태권도 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쁨이 됐다.
키가 크고 살이 오르던 5학년 2학기, 육상 코치가 투포환을 시작해 볼 것을 제의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승훈이를 믿고 지지했다. 승훈이 역시 할아버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주요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며 올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경기체육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10월 받은 경기체고 합격증명서를 냉장고에 자랑스럽게 걸어놓았다.
승훈이는 “할아버지는 제가 부탁하면 뭐든지 들어준다. 다 컸지만 아직 할아버지 손길이 필요하다”며 “항상 밥을 차려주는 게 가장 좋다. 평소에는 표현을 잘 못하지만 가장 고마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조금은 다른 가정환경을 가진 승훈이가 올바르게 그리고 인정받는 투포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슈퍼 아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된 운동을 버티는 힘 ‘할아버지’
승훈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남모를 고민이 하나 생겼다. 투포환을 하려면 손발도, 키도, 덩치도 커야 하는데 키가 175㎝에 머무르고 있는 것. 할아버지 역시 승훈이 부모가 작아 많이 안 클 것 같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할아버지만의 비법인 ‘할아버지표 김치찌개’를 상에 내놓는다. 승훈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도 피자도 아닌 할머니가 만들어준 ‘김치’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김치에 대한 입맛은 까다로워 다른 집 김치를 주면 먹지 않을 정도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담가놓은 김치는 할아버지 손에서 새롭게 탄생해 승훈이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힘으로 바뀐다.
할아버지는 “안사람이 없으니까 승훈이 먹는 게 가장 신경쓰인다. 생전에 애들한테 엄청 잘했었다”며 “운동하는 애를 잘 먹여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건 없고, 좋아하는 김치에 체력보충 해주려고 고기를 넣어 끓인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는 혹시나 부모의 빈자리가 티가 날까 더욱 헌신적인 사랑으로 승훈이를 키웠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한눈에 보이는 새하얗게 빨린 운동화 네 켤레가 이를 증명해 보인다. 집안 곳곳에는 승훈이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는 사진들과 메달, 트로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할아버지의 자랑이자 투포환 선수 김승환을 있게 한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운동해보란 말 안 했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곁에 없다면 전 운동 안 해요. 아니 못하죠. 저한테는 할아버지가 아빠고 엄마니까요.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갈 생각하면서 운동하는 건데요. 존재감이 매우 크죠.”
■“이젠 제가 할아버지를 보살필 차례”
승훈이 집에 들어서면 잔뜩 걸려 있는 메달이 가장 눈에 띈다. 2009년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승훈이의 흔적들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재양성서비스를 지원받고 있는 승훈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체급도, 폼도 바뀌어 올해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연습을 중단한 적이 없다. 김승훈의 트레이드 마크 ‘착실’은 코치도 인정한 부분이다.
할아버지는 “잠깐 자리를 비우면 딴 선수들은 장난치고 딴 짓 하는데 승훈이는 혼자 계속 연습을 한다고 코치님이 그러더라”며 “승훈이는 크면서 나쁜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적도 없는 그야말로 착한 애”라고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이어 “매일 등산을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승훈이 뒷바라지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착실’을 달고 사는 승훈이에게 투포환은 친구이자 인생의 목표다. 열일곱 나이에 일찍이 철이 든 승훈이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 국가대표가 돼야 할 이유가 있어서다. 두말할 것 없이 ‘할아버지’다.
15년을 키워준 할아버지가 지난해 할머니를 보내고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여려지고 있는 게 승훈이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승훈이는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다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데 나를 아빠로 봤다”며 “마음이 안 좋기보다 그냥 신기했다”고 말했다.
승훈이는 국가대표가 돼 머리가 하얘지고 주름이 깊어진 할아버지에게 고기와 약주 대접을 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여태껏 저를 키워주셨잖아요. 제가 할아버지를 보살필 차례죠. 투포환을 친구처럼 자주 보고 자주 생각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내가 집안에서 큰 사람이 돼야 할아버지도 저도 행복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