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언론보도]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빈혈 제자’ 고기 사먹이며 함께 훈련… 경보대회 우승 이끌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7,473회   작성일 : 15-08-21

본문

“아이가 시합을 앞두고 몸이 아파 욕심껏 훈련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것도 힘들 텐데 몸까지 아프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제가 한 것이라고는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준 것뿐입니다.”


지난 21일 경기 하남시 덕풍동 남한고등학교에서 만난 오필완(45) 씨는 지난 1996년부터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단거리 달리기와 경보를 가르치는 20년 차 육상코치다. 오 코치는 빈혈을 앓고 있는 부모 없는 유다빈(16) 양을 2012년부터 4년간 친자식처럼 돌봐 육상계가 주목하는 경보 선수로 키워냈다. 이날 만난 남한고 교사들과 동료 코치들은 오 코치를 두고 “장한 선생님”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남한고와 같은 지역에 있는 하남동부중학교 코치를 겸하고 있는 오 씨는 2012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다빈 양을 처음 만났다. 그해 다빈 양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학생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출한 이후 아버지와 단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다빈 양은 아버지의 사망 후 친척 중에 유일하게 자신을 돌봐주겠다고 나선 고모부의 집에서 생활했다. 오 코치는 “아이가 육상을 시작하겠다고 찾아왔는데 어깨는 축 처져있고,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며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는 육상을 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학생이 기특해 시험 삼아 400m 달리기를 시켜보았다. 다빈 양의 첫 기록은 형편없었다. 당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보다 100m 가까이 뒤졌다. 하지만 오 코치는 다빈 양에게서 경보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체격이 다부졌고 운동 신경도 타고난 듯 보였다”고 말했다.


오 코치는 다빈 양이 가진 재능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던 중 다빈 양을 둘러싼 안타까운 사연을 모두 알게 됐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아이가 겪었을 기막힌 시련들을 생각하면 쉽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오 코치는 자신의 안목을 믿고 다빈 양을 경보 선수로 지도하기로 했다. 그는 바로 훈련 일정을 짜서 혹독한 훈련에 들어갔다. ‘늦은’ 나이에 경보를 시작한 다빈 양이 먼저 운동을 시작한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훈련을 시켰다. 다빈 양도 오 코치의 지도에 잘 따라주었다. 훈련에 돌입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오 코치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다빈 양은 시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다빈 양은 지난해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경보 5000m 부문에 출전해 1위에 입상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오 코치와 다빈 양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지난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던 다빈 양은 빈혈 진단을 받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 다빈 양은 서너 달에 한 번씩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빈혈 증상 때문에 훈련을 받다가 운동장 한가운데서 소리 없이 울었다.


오 코치는 아픈 다빈 양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훈련 일정을 다빈 양의 몸 상태에 맞춰서 다시 짰다. 보통의 선수들은 전국 규모의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경기 전 최소 6개월 동안 전력을 다해서 경기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하지만 다빈 양은 중간중간 몸이 아파 입원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에 보통 선수들처럼 훈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 코치는 다빈 양의 몸 상태가 좋은 시기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훈련하는 방식으로 다빈 양을 지도했다.


또 오 코치는 ‘영양이 부족해서 병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다빈 양에게 고기를 사 먹였다. 그는 몸이 아픈 다빈 양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쓰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굣길에 동행하는 수고도 마다치 않았다.


오 코치가 이처럼 아픈 다빈 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역시 아픈 몸으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오 코치는 왼손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 전체가 없다. 하지만 주변의 응원 속에서 실업팀에도 입단하고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다빈 양도 오 코치의 믿음과 지극한 보살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아픈 몸을 이끌고 좋은 성적을 내주었다. 올해 경기도 학생체육대회 경보 5000m 부문에서 1위에 입상했다.



그는 “아파도 포기하지 않는 오뚝이 같은 아이를 볼 때면 장하면서도 한없이 안쓰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 코치와 다빈 양은 여전히 경보 국가대표와 실업팀 입성의 꿈을 꾸고 있다. 오 코치는 “병이 도져 몸 상태가 빨리 회복되지 않아 풀이 죽어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이가 지금처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