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경기일보 기획기사] “사랑 그 이상, 가족이 내게 준 것”…5월 22일 '가정위탁의 날'
매년 5월22일은 ‘가정위탁의 날’이다. 보건복지부가 혈연으로 맺은 나의 아이와,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아이 둘을 행복한 가정에서 키워내자는 의미를 담아 가정위탁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고 제도를 적극 홍보하기 위해 제정했다.
가정위탁은 부모의 질병, 이혼, 사망, 아동학대, 수감 등으로 친부모가 아동을 보호할 수 없는 상태인 ‘보호대상아동’을 양육하기에 적합한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 및 보호하는 아동복지제도다.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가기까지 성장을 돕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가정 해체를 방지하며 궁극적으로는 아동이 든든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또래와 같은 아동·청소년기를 보내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가슴으로 품은 ‘가족의 또 다른 이름’, 위탁가정의 진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하늘이 내게 준 선물”…위탁부가 전한 이야기
지난해 열렸던 ‘2023 위탁가정 힐링캠프’에서 한 가족이 행복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힐링캠프는 친인척 외 일반·전문·일시 위탁 가정 구성원들의 친밀감과 관계 강화 등을 목적으로 매년 진행되고 있다. 초록우산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 제공
윤민찬씨(가명·63)는 막내 윤현수군(가명·초등학교 저학년)과 처음 만났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몇 해 전 여름날, ‘띵동’ 소리에 아내와 함께 대문을 열자 캐리어를 하나 들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현수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어찌나 반질반질 잘생겼고, 머리는 또 얼마나 단정했는데요. 막내가 나를 쳐다보는데 그 순간 내가 원래부터 쭉 키워왔던 아이 같더라구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윤씨 부부는 몇 날 며칠을 쓸고 닦으며 준비한 현수의 방을 보여주고, 장난감 매장으로 함께 향했다. 넓디넓은 매장에서 현수는 민찬씨의 손을 꽉 잡았다. “그때 생각했죠. 아 이 손을 놓으면 안되겠다.”
현수는 많은 이별을 경험한 아이였다. 무연고 아동이던 아이는 과거 어른들에게 학대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시간으로 아이는 가끔씩 튀어나오는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고, 그로 인해 민찬씨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민찬씨 가족은 사랑과 이해로 극복해 나갔다. 함께 살아가며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줬고, 온 가족이 피부와 피부를 맞댔고 막내, 현수를 늘 껴안았다. 민찬씨가 막내를 씻기면 아내가 옷을 입히고, 윤씨의 딸은 로션을 발라줬다.
“아이가 늘 버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깊게 자지 못했어요. 그래서 매일 아이를 데리고 잤어요. 이제는 같이 자도, 떨어져 자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더라구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현수는 180도 달라졌다. 누나가 친구들과 다투고 울면 그 앞에 가서 누나를 껴안고 위로해주고, 맛있는 게 있으면 누나를 위해 꼭 남겨둔다. 엄마·아빠 생일에는 코묻은 돈으로 케이크를 사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도 매일 ‘나가 놀자’는 연락이 올 정도로 학교 생활도 교우관계도 급속도로 좋아졌다. 막내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일기장과 학교에서 타 온 각종 상장을 자랑하는 민찬씨의 입가에선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윤현수군(가명)의 일기장에는 “가족과 영원히 살고 싶다”는 등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겨 있었다. 아버지 윤민찬씨(가명) 제공
“아이에게는 부모나 어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입니다. 막내는 누군가와 같이 사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커왔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몰랐던 것 뿐입니다. 이제는 내(현수)가 떼쓰지 않아도, 과격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우리 가족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된 거죠. 그리고 자기가 받은 사랑과 배려를 친구들과 주변 사람에게 전할 수도 있게 됐죠.”
무엇보다 달라진 건 민찬씨네 가족이었다. 여느 60대 부부, 장성한 아들·딸을 둔 가정처럼 조금씩 대화가 끊기며 삭막함이 돌던 집은 늦둥이 어린 막내 현수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더없이 단란해졌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온 가족이 안방 침대에 모여 수다를 떨며 마무리된다. 가장 퇴근이 늦은 딸(민찬 군 누나)이 도착하면 온 가족이 한 곳에 누워 살과 살을 맞대고 그날 있었던 일을 주고 받는다.
민찬씨에게 막내를 키워나갈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묻자, 그는 특별한 원동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일’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루에, 1년에 몇 번의 숨을 어떻게 쉴지 목표를 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내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도 특별한 사명감이 아닌 그저 내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현수는 저희에게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이예요. 애교쟁이 막내가 우리 집에 찾아와 가족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매일 사랑한다 말해줍니다. 시간이 흘러도 언제 어디든 엄마와 아빠가 있으니, 현수가 늘 자신감을 가지고 살길 바랄 뿐입니다.”
■ “든든한 울타리, 나의 가족이 있기에 어른이 될 수 있었습니다”…자식들이 전한 이야기
박찬혁군(가명·25)이 속한 가정위탁 청년들의 자조모임 ‘청하(청년들의 걱정 없는 하루)’의 ‘2023 여름캠프’의 모습. 청년들은 서로를 지지하고 자립에 대한 정보와 경험 등을 나누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초록우산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 제공
가정위탁제도는 무엇보다 아동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다는 목적을 갖는다. 또래와 같은 아동·청소년기를 보내고 으레 찾아오는 사춘기를 경험하고, 그렇게 성장해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커갈 수 있도록 아동에게 울타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현수군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친부모와 떨어져 가정위탁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위탁가정의 든든한 울타리에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났다.
김현지양(가명·22)은 친부모로부터 유기 등의 이별을 겪었으나 위탁모의 사랑으로 당차고 씩씩한 사회 초년생으로 커갈 수 있었다. 김양은 “언제든 엄마와 오빠가 내 편이 되어줄 거란 생각에 독립을 했어도 늘 마음이 든든하다”며 “가정위탁제도는 한 아이의 또 다른 인생을 만들어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가정위탁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친인척 위탁가정에서 자라난 박찬혁군(가명·25)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주는 사랑과 제도권 안의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라난 박군은 자신과 같은 위탁보호 및 자립준비 후배 등을 대상으로 멘토링 및 자립에 대한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 박군은 친모와의 교류도 이어나가며 위탁가정과 원가정 사이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조현웅 초록우산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 관장은 “아동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묵묵히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려준 위탁가정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아이들이 따뜻한 가정에서 커갈 수 있도록 가정위탁제도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나경 기자